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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당굿당 한공주 선생의“지혜로운 삶·믿음의 삶 에세이

작성자 한민련 작성일15-09-23 11:02 조회3,8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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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당굿당 한공주선생의“지혜로운 삶 믿음의 삶 에세이

(사단법인 한국전통민족종교총연합회 전통문화예술 학예위원)

운명을 바꾸는 천지신명의 참다운 지혜

인간은 인과응보 벗어날 수 없어…

나를 비워내는 뼈를 깎는 수행 있어야
운명을 거부하는 것은 苦(고)의 시작…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행복의 원천
수행 통해 운명을 스스로 바꾸고 개척해야

지혜로운 새 삶의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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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내 운명(運命)이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 운명은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일까요? 인생에는 숙명(宿命)도 있고 운명도 있습니다. 그럼 숙명은 무엇이고 운명은 무엇일까요? 숙명은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내 부모가 싫다고 바꿀 수가 없겠지요.

또 태어난 해도 이미 결과가 지어졌으니 바꿀 수 없고 성별도 남자나 여자의 몸은 이미 결정됐으니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숙명과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운명이란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운명은 결과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어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으로 노력하여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운명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전생의 업인(業因)에 따라 자기만의 삶의 모습을 갖고 태어납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어떤 인연을 만나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 돈과 재산은 어느 정도를 벌어 쓸 수 있을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삶의 윤곽이 전생의 업(業)에 의해 결정되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내 전생의 업을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절대 그 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불교용어로 신(身)구(口) 의(意) 삼업(三業)이라 하고 신명세계에서는 숙연(宿緣)과 죄업(罪業)이라 하지요
나는 오랫동안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크고 작은 일에 대하여 우연이냐 필연이냐 하는 판단에 고심해 오고 있다. 만약 우연이라 한다면 우리는 더욱 불안에 못 견디게 될 것이고 필연이라 하면 숙명론에 치우쳐 모든 것을 포기하는데 재촉할 것이다.
신명님에 의하면 이 자연 세계나 인간 세상에 있어서 우연은 단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생기게 되는것은모두그원인이 있기때문에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름모를 풀한포기도 그것이있기까지는 그것이 있기 위한 원인이있다고보는것이다.
그것을 소위 연기론(緣起論)이라 한다. 인간사에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항상 수시로 일어난다. 비록 지금 일어난 일이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바로전의 어떤 원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원인의 씨앗이 있었다는 것이다. 눈으로 볼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하더라도 나의 생
각을 초월하여 어떤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어떤일의 합리적 근거를 찾으러 애쓰지만 합리적 근거를 잡지 못하면 그 일을 무가치한 것으로 이해 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신명의 숙연(宿緣)이라는 말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세계가 아닌, 생각으로 도달될 수 없는 원인을 말합니다.
결코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그리고 그 원인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곧 내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발이되어 나타난 것이고 그것을 죄업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모든 행위의 총합(總合)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현재의 행위에 따라 또 다시 내 미래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자신의 행위에 따라, 자신의 마음에 따라, 자신의 욕심과 집착의 크기에 따라, 자신의 마음공부와 기도의 정도에 따라 내 삶은 언제든지 180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과 벗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지혜로운 삶의 방법을 안내 해 준다면, 아마 선지식(善知識)이나 훌륭한 스승과의 인연이 생겨나 내 인생의 고단함을 벗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진리 전에 내 과거의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마음을 비우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욕심과 집착을 말끔히 비워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마음속에 응어리 져 있던 미워하는 원수에 대한 불같은 화를 다스리고, 마음 깊
은 곳에서 용서를 해 주면 아마 후에 닥칠지도 모를 홧병이 소멸될 수 도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지금 이순간 내가 하는 행위에 따라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 것입니다. 선지식의 일장춘몽과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이치에 따르면 그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업이라는 것 또한 내가 짓는 정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보시(布施)를 행하는 것입니다. 선(善)을 행하는 것, 내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업을 뛰어넘는 최고 단계의 실천 수행인 것입니다. 꼭 재물로만 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 육신 물질 삼 방면으로 베풀면 그것이 다 보시입니다. 이러한 보시행이 내 앞에 펼쳐질 앞으로의 삶을 하나하나씩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보시야말로 내 삶을 바꾸고, 내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요?
둘째, 수행(修行)을 하는 것입니다. 운명을 뛰어넘는 요소가 바로 수행입니다. 마음에 욕망과 집착을 비우고, 번뇌와 아상(我相)을 놓고 비우는삶, 그것이야말로 업을 뛰어넘는 비결일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가 옳다는 아집(我執)을 놓아버리는 것, 내 소유와 내 물건이라는 소유욕을 놓아버리는 것, 모든 판단과 분별을 쉬는 것, 시비 분별을 끊고 생각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 등이 다 수행입니다.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 이 삼학수행(三學修行)이 내 앞에 펼쳐질 앞으로의 삶을 하나하나씩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은 모든 고(苦)의 시작이며,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평범한 인생입니다. 수행을 통해 운명을 스스로 바꾸
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수행자가 가야할 당당한 삶의 길이 아닐 런지요?
셋째, 기도생활(祈禱生活)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아가려면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이 함께 필요합니다. 자력은 타력의 근본이 되고 타력은 자력의 근본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할만한 타력을 얻은 사람은 진리의 은혜와 위력을 알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향해 즐거운 일을 당할 때에는 감사를 올리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사죄를 올립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리 전에 정성으로써 기도를 잘 올리면 지성이면 감천으로 자연히 진리의 위력을 얻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며 우리의 팔자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기도도 올리는 법이 있습니다. 잘 못 올리면 천벌이 내릴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법도(法度)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법이란 천지에 당한 죄 복(罪福)은 천지에게, 부모에 당한 죄 복은 부모에게, 동포에 대한 죄 복은 동포에게, 법률에 대한 죄 복은 법률에게 비는 것이 사실적이고반드시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겠지요? 이 세 가지 운명을 바꾸는 방법으로 마침내 죄업을청산하고 운명을 바꿔 우리 모두 이 운명을 바꾸는 법으로 천지신명과 함께 낙도생활을 누려보시지요!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살며사랑하며- 에세이특집 7 운명을 바꾸는 천지신명의 참다운 지혜
▶사신당굿당 한공주 선생의“지혜로운 삶·믿음의 삶 에세이(사단법인 한국전통민족종교총연합회 전통문화예술 학예위원
▲한공주 선생은 숙명도 운명도 신명을 다해 노력하면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개과천선 된다고 말했다“.( 인생은 재행무상이요 일장춘몽이라…”일체만상은 정해진 대로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마음따라 길따라 길동무와 함
께 철길을 걷는 것이 지나온 삶의 로정이 아닐까?)    <사진=이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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